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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_약/기타

성인 ADHD환자의 학창 시절

#일단 성인 이전의 이야기 

1. 물건을 너무 많이 잃어버림..

가족 여행을 가서 호텔 서랍장에 물건을 넣어놓고 그냥 와버리거나, 버스에 아주 비싼 악기를 두고 그냥 내리거나, 밥을 먹으려고 빼놓은 교정기를 그냥 쓰레기통에 같이 버리거나,  택시에 핸드폰을 두고 내리거나.. 이 정도는 찾느라 꽤 고생했거나 부모님께 혼이 크게 났던 사건들이다. 그 외에 평상시에 자잘한 분실은 더 셀 수 없다.. 

2. 중요한 걸 못 들음

부모님께 많이 혼났다. 왜 또 너만 모르냐고. 예를 들면 학원이 휴강을 한다거나, 학교에 언제까지 무엇을 제출해야 한다거나 하는.. 학생이 챙겨야 할 것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까먹었다기 보단 그런 안내 사항을 들은 기억이 없을 때도 많다.  그래서 억울했다. 내가 그 교실에 같이 앉아있긴 했지만 난 진짜 못 들었다.

3. 들어도 까먹음 그래서 중요한 일들을 놓침

아예 못들을 때도 있지만 들어도 그때뿐 나중에 생각이 안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성인 돼서 더 심해졌기 때문에 학창 시절 일화로 기억이 나는 건 별로 없다. 

4. 중독

나는 늘 무엇인가에 중독되어있는 아이였다. 

내 아이덴티티엔 무엇인가가 항상 있었다. 중2 때는 껌을 씹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그냥 몇 개 씹었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껌을 2통씩 샀고,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곤 늘 껌을 씹고 있었고(수업 때 몰래 씹다가 걸려서 혼난 적도 많다), 자기 전에도 씹다가 잠들어서 아침에 뱉고.. 이 정도다. 

중3 때는 콜라를 마셨다. 매일 엄청 많이. 그냥 물 대신 계속.. 그래서 중3 생일 땐 콜라를 엄청 받았고, 이때 친구는 20살이 되어서도 콜라를 한 박스 생일에 사주곤 했다. 중2 때는 전교에서 껌 하면 나였고 나중엔 또 콜라 하면 나였다. 아마 나를 중학생 때 알았던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 바로 날 떠올릴 거다.  

이 것말고도.. 게임, 연예인, 피어싱.. 학창 시절에 다른 친구들도 소소히 해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냥 평범하게 즐기질 못하고 한 번 빠지면 뭔 일이 날 때까지 파게 되었다. 

껌과 콜라는 치과를 학원 대신에 가기 시작하면서 끊게 되었고 피어싱도 한쪽 귀에 7~8개씩 하다가 크게 혼나고 나서야 관뒀고... 중학생들이 아이돌을 많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나처럼 방송국에 몇 번씩 가고 앨범을 몇 개씩 사서 팬사인회를 여러 번 간.. 15살은 없었다. ㅠㅠㅠ 

하나씩 보면 그나이에 그럴 수 있지.. 하는 것들이기는 하나. 나는 늘 무엇인가에 빠져 있었고 그 사이에 공백이 없었다는 게 특징인 것 같다. 

#내가 ADHD라는 것을 알고 나서 학창시절을 돌아봤더니 보이는 것

19살. 처음에 정신과 의사가 나보고 ADHD일 수 있으니 제대로 검사를 해보자..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닌데요? 저 공부 잘해요. 그리고 맨날 반장이었어요. 저 그런 문제는 없어요!" 

왜냐면 그 때 뭣도 모르던 19살의 내가 떠올리는 ADHD란 교실에서 다른 애들 수업하는 데 혼자 농구공 튀기고.. 막 선생님이랑 친구들한테 소리 지르고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ADHD라는 것을 진단 받고 인정까지 하고 난 후에 중,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나 ADHD였구나.. 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1. 내가 기억하는 내 학교 수업 시간 

-수업 시간에 왜 다른 애들은 나처럼 심심하지 않은지 궁금해하면서 주변을 둘러본적이 많았다. 그냥 애들을 구경하면서 와 쟤네는 지금 안 심심한가?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이 무엇인가 바빴다. 무엇인가를 쓰다가도 앞에 친구가 발표를 하러 일어나면 의자에 지우개를 올려놓고, 앞에 앉은 친구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쓸 때는 겨드랑이에 파일을 꽂아서 깜짝 놀라게 해야 하고, 내 짝꿍 손으로는 장난을 치고 다른 분단에 앉은 친구한테 지우개를 던지거나 하는 등.. 나는 그러면서 공부를 했다. 생각해보니 가만히 공부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빈칸 채우기 학습지가 자꾸 빈칸이 넘어가서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분명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이미 빈칸 몇 개가 지나가 있어서 뭐야 언제 말했지? 하고 짝궁걸 보고 썼다. 그리고 이 문제는 유독 한 과목의 수업일 때 심했는데. 바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생물이었다. 

2. 선생님, 친구들

-몇몇 담임선생님들은 내 짝궁을 바꾸셨다. 뽑기로 뽑힌 짝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반에서 제일 얌전하고 조용한 친구로.. 그땐 왜 그런지 몰랐지만 그 선생님들은 아셨나 보다. 내가 산만하다는 것을.. 근데 난 누구랑 앉던지 재미있었다.  몇 개 기억나는 말들이 있다.

(나랑 장난 치는 짝꿍을 보며)"왜 OO이 옆에만 가면 얌전하던 애도 이상해지니?" (선생님)

(내 손에 계속 샤프를 쥐어주며)"OO아. 샤프 쥐어..."(짝) 

한 번은 내 책상을 교탁 옆에 붙이신 적도 있다.. 이런 것들이 생각나자 나중엔 내가 처음에 ADHD가 아니라고 확신했던 게 우스울 정도였다.